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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회안대군파
 
정복규 논설위원
 회안대군 이방간(李芳幹.1364∼1420)은 태조 이성계의 4남이다. 함흥 귀주동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망우당(忘牛堂)이다. 그는 고려 때 소윤(少尹)을 지냈으며, 조선 개국 때는 공신에 오른다.
 조선의 2대 왕인 정종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차례에 따라 회안대군이 왕위 계승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성계의 5남인 정안대군 이방원이 더 유력했다. 당시 지중추원사 박포 는 이방원을 도와 정도전 제거 등에 공이 많았다. 그러나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다며 불평하다가 죽주(竹州.현 충북 영동)로 귀양을 갔다.
 여기서 박포는“정안대군이 장차 방간을 죽이려 한다.”고 회안대군에게 거짓으로 충동질한다. 결국 회안대군은 병사를 이끌고 개경에서 동생 이방원과 교전했으나, 동생에게 패하고 만다. 박포는 선동한 죄가 무겁다 하여 참수되었으나 이방간은 처형을 면한다.
 태종 이방원은 회안대군에게 여러 차례 은교(恩敎)를 베풀었으나 신하들의 쟁론으로 황해도 토산현에 정배된다. 이방간은 자원하여 자신의 성씨 본관인 전주 쪽으로 내려간다.
 그 뒤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구만리 천내(川內) 부락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당시 아버지 이성계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복상(服喪)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게 여겼다. 그러면서 다시는 한강을 건너가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자손들에게도 전주에 살도록 유언했다.
 태종은 만년에 특사를 보내어 회안대군에게 상경하라고 한다. 이 때 회안대군은 한양으로 가던 중 1420년(세종 2) 57세로 충남 은진에서 생을 마쳤다. 묘소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법사산(法史山.일명 법수뫼)에 있다. 이방간은 의령군 이맹중, 창녕군 이태, 금성군 이선, 금산군 이중군 등 4남을 두었다. 회안대군파의 인구는 약 4만 명이다.


기사입력: 2008/03/13 [19:10]  최종편집: ⓒ 전북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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