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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소통의 방식은 어떻게 형성될까?(15)
 
-황경연, 비전심리상담코칭센터 대표-

▲     © 관리자

 한번 형성된 성격(생활양식)을 변화시키기란 그리 쉽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 세계를 이미 형성된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각이 그릇되고 자신의 그것만이 옳은 것으로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형성된 자신의 적개심, 무시감, 열등감, 우월감 등의 감정에 사로잡혀 보다 객관적이고 건전한 판단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변화의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교육과 모든 상담은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그 일환의 하나로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위니캇이 제안한 ‘담아내기’에 대해서 보았다. 이번 호에서도 계속해서 살펴보자.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어보기’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내 딸 말리는 내 인생의 스승이다. 나는 말리가 스무 살이 된 지금에도 그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말리는 생후 11개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머리꼭지를 돌게 했다. 큰애와는 달리 말리는 늘 터무니없는 것을 원하고, 징징거리고, 신경질이 많은 등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날 때면 울음을 터트리고 얼굴은 왜 그렇게 불만으로 가득 차 있는지, 나는 매일매일 말리와 씨름하며 5년을 보냈다.

그런 내가 육아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시 나는 육아교육 전문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 자신은 부모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지 못했다.
말리가 네 살이 되자 나는 유치원에 등록시켰다. 그러나 말리는 아침마다 유치원에 안 간다며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자기는 유치원이 싫은데 엄마가 억지로 보내려 한다며 엄마는 나쁘다고 오만 짜증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말리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아이를 괜히 유치원에 보낸 것은 아닌지, 다른 유치원을 알아봐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짜증이 났고 신경이 곤두섰다.
매일 아침 8시면 나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짜증 그만내고 빨리빨리 움직이라며, 빨리 옷 입지 않으면 유치원에 늦는다며, 옷 좀 고분고분히 입으면 안 되냐며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고 화를 쏟아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 말리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을 것이다. 나는 말리가 도대체 왜 저 모양일까라고 생각하는 대신 그것이 말리의 표현방식이라면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말리를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말리야, 너 옷 입기가 정말 싫은가보구나 하고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말리가 ‘응!’ 하고 재빨리 대답했다.
 
엄마와 헤어져서 유치원에 가는 것도 싫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더 크게 ‘응!’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실은 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정말 싫다고 했다. 그러자 말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자명종 소리에 깨서 이불 밖으로 나와야 할 때가 하루 중에서 제일 싫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고서 다시 말해 내가 말리의 기분과 입장을 인정하고 받아주게 되면서부터 놀라운 일들이 생겼다. 참다운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럼으로써 좋은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말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말리도 짜증이 덜해졌고, 입에서도 스스로 ‘하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녀나 배우자를 비롯한 그 누군가가 짜증과 불평불만과 공격을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되가 아닌 말’로 되돌려주곤 한다. 그 이유가 어쩌면 그러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짜증과 그 공격의 화살을 받아낼 수 있는 그릇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닐까? 담아낼 수만 있다면 말리의 엄마처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기사입력: 2018/01/09 [21:00]  최종편집: ⓒ 전북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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